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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업 및 고려인특별법 개정등 제도개선사업

고려인 역사 및 독립운동가발굴과 후손찾기 기념사업등으로 고려인동포의 역사를 기억함으로서 고려인 동포의 한민족 정체성과 구한말 대한민국의 역사를 되새기며 더불어 살아갈 정신적, 제도적 기반을 다지고자 함.

2014년 고려인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2017년 강제이주80주년 기억사업의 문화제 및 제도개선을 위한 국회간담회, 청와대 국민청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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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02 11:50
굴복하지 않는 고려인의 용기, 고려인독립운동기념비건립 카카오 같이가치를 시작합니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969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63892 [2381]
경 너머의 고려사람을 아시나요?

863년, 연해주 노보고르드스키 국경감시소 담당관은 군(軍) 총독에게 짧은 보고를 합니다. <한인 13가구가 빈곤과 굶주림 및 착취를 피하여 비밀리에 남 우수리스크 포시예트 지역의 치진헤에서 농사를 짓고 있고,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허락해줄 것을 요청한다> 이 보고서는 후에 러시아 극동 지역의 한인 거주 사실을 담은 최초의 공식문서가 됩니다. Ким Сын Хва, Очерки по истории советских корейцев. Алма-Ата, 1965.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의 원인과 과정>(이원용 동국대 연구교수, 2011)에서 재인용 당시는 조선 말기, 같은 해 12살 왕(고종)이 등극합니다. 몇 해 뒤 대홍수가 북부 지방을 덮치고 굶주린 사람들은 세금수탈이 없는 비옥한 땅을 찾아 어디든 가야 했습니다. 국경은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연해주 지역에는 어느새 러시아인보다 더 많은 조선인들이 모여 살게 됩니다.(1890년 말 러시아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조선말을 하는 사람이 26,005명이라 합니다.) 이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벼를 경작하며 자신들을 ‘고려사람’이라 불렀습니다. 러시아어로는 카레이스키(корейский). 번역하면 ‘코리아’ 사람. 우리는 이들과 그 자손을 ‘고려인’이라 부릅니다.

안중근 의사도 고려인이라는 사실 아세요?

150년 후, 고려인들은 다시 한국 땅을 밟습니다. 강제 이주와 소비에트 연방 붕괴 등 이들을 둘러싼 역사는 삶의 터전을 자꾸만 휩쓸고 가고, 이주의 역사는 끝날 줄 모릅니다. 이들의 증조모는 조선에서, 조부모는 극동 연해주에서, 부모는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도돌이표처럼 그 자신은 부모가 조선 땅이라 부르던 한국에 옵니다. 종일 낯선 땅을 개간하던 고려인 1세의 역사는 변두리 공장 담장 안에서 반복됩니다. 이들은 일터에서 질문 받습니다. “어디 사람이냐.” 우즈베키스탄 (등) 국적을 가졌으나, 러시아 말을 쓰고, 조선의 문화를 지니고 삽니다. 대답하지 못하고 이들은 서툰 한국말로 되묻습니다. “나는 러시아 사람인지, 우즈베키스탄 사람인지, 한국인인지.” 이들의 혼란은 ‘이곳에선’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내 8만 명이 있다고 추정되는 고려인들을 우리는 본 적 없고 만난 적 없습니다. 체류자격 등 비자와 각종 정책은 고려인들을 공단 옆 가난한 동네에 몰아넣고, 저렴한 노동력으로만 존재하게 합니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고려인 4세는 역사 수업시간에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안중근 의사도 고려인이라는 사실 아세요?” (안중근 의사는 1907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에 가담했습니다. 고려인 1세대라고 부를 만합니다. 당시 연해주 일대에 항일의병으로 참가한 고려인 수는 10만 명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저 그 한마디. 교사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외국에서 왔기에 말이 어눌하고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이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아이가 할머니에게 듣던 수많은 고려인 선조들의 이야기는 ‘이곳에’ 머물지 못합니다.

고려인은 지금, 여기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이야기는 머물지 못해도 사라지진 않습니다. ‘내가 어디 사람인지’ 묻는 이들은, 그러나 1세대 고려인을 기억합니다. 항일항쟁에 참여했다는 자부심, 강제이주의 슬픔, 개척의 자부심, 변주를 거듭해오며 지켜낸 문화와 공동체… 이 모든 이야기들은 가슴에 켜켜이 쌓여 자신들의 역사와 정체성, 그러니까 ‘고려인’을 만들어 왔습니다. 수업시간에 손을 들어 안중근 의사를 언급한 고려인 4세는 ‘고려인’이 여기 존재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이들의 삶과 역사를 기록하는 이유입니다. 4세대에 걸친 고려인의 역사와 현재 삶을 여덟 차례의 이야기에 담고자 합니다. 연재 집필 : 희정 기록노동자

다음 이야기 : 3차례의 이주, 3세대의 기억

고려인은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 등에 거주하는 한민족이나 그들의 후손을 이르는 말입니다. 조선 말과 일제강점기에 연해주 지역으로 대규모 이동하여 정착, 이후 1937년에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강제 이주 되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현재 한국을 포함 세계 각지에 50만 명의 고려인이 있다고 추정됩니다.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비용 모금을 위한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펀딩 사이트 <같이가치>에 공동 기재되고 있습니다.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는 연해주 등지에서 이뤄진 고려인의 항일항쟁 역사를 대한민국 땅에 적어내리는 기록입니다. 낯선 땅에서 굴하지 않고 삶을 지켜낸 이들, 더 나아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러나 이름 없이 잊힐 수밖에 없던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는 작업에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5만 명의 건립자가 되어주세요. _ 고려인독립운동 기념비건립 국민추진위원회

◯ 고려인독립운동 기념비건립 국민추진위원회는 3.1혁명, 3.17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독립선언, 4.11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뜻 깊게 맞이하고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연해주 독립운동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100인의 공동대표가 자발적으로 모여 결성한 단체입니다. ◯ 기념비건립 장소(안) ◾ 플렌1 서울시 효창공원 ◾ 플렌2 안산시 화랑유원지 ◯ 기금 조성에 따른 기념비 건립착수 ◾ 8월 기념비 규모 확정 ◾ 9월 기념비건립 선포 문화제 ◾ 9월 기념비 디자인 공모 ◾ 9월 기념비 설계 ◾ 10월 기념비 착공 ◾ 2019년 3월 17일 <연해주 3.17 독립선언 101주년 기념식 및 기념비 제막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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